여행기

터키, 그리스 여행기 (5)

리 나날 2007. 11. 3. 20:18

제 6일 (10월 14일)

 

    ㅇ  아침먹고 일찍 석회암산 관광하기

          

   ㅇ  히에라 폴리스

 

             석회붕을따라 죽 올라오면 위쪽으로는 넓은 언덕에 유적이 펼쳐져 있는데

             2,3세기경에 세워진 히에라폴리스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신전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 페르가몬 왕국에

             이어 고대 로마가 다스리다가 1354년 대지진으로 매몰되어 현재는 페허가 되었지만

             아폴로 신전과 원형극장이 남아 있고 로마식 가도는 발굴 복원 중이라고 하며.

             온천물이 솟는 땅에 만들어진  성소가 있는 도시 라는 뜻으로 아직 발굴이 완저히

             이루어 지지 않아서  넓은 땅에 널부러져 있는 유적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명이 밝아오는 히에라 폴리스의 유적지

 

 

 ㅇ 노천 온천에서 발을 담그고 잠깐이나마 족욕을 즐김

            . 남자들은 족욕이 즐겁지 아니한가?

 


                                 족욕하는 여인들

 

  ㅇ  에베소(지명은 셀축)

  ㅇ   에베소 가는길에 비가 많이와 걱정했는데 다행이 비가 멈추어

        이즈미르로향하여 간다. 이즈미르는성서의 지명으로 서머나라한다 

        현재 이즈미르 주의 셀축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

 

  ㅇ   터키의 에베소 지역에 들어섰을 때의 내 느낌은 참으로 막막했으며

        고대 도시의 잔해들이 도처에 뒹굴고 있어 막강하던 날을 떠올려 본다.

 

  ㅇ   기원은 BC6000년경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래의 연구 조사와 발굴 작업을 통하여 에베소와 현재 성이 있는 아야슬룩
         언덕 주변의 고분 지역이  청동기 시대와 히타이트 시대의 거주지였음이 밝혀졌으며
         히타이트 시대에 이 도시는 아파사스로 불렀다.
         BC1050년경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고대 항구 도시 에베소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BC560년경 에베소의 중심지는 아르테미스 신전 주위로 옮겨졌다.
 
        현재 위치의 에베소는 BC300년경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인
        리시마코스에 의해 최초로 건립되었으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최고의 황금기를
        누린 에베소는 소아시아 주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 도시로서 당시에 20만명이 거주했고
        비잔틴 시대에 에베소의 중심지는 최초의 위치인 아야술룩 언덕으로 다시 한번 옮겨졌다.
 
        신약성서 에베소서의 본고장.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포교하여 많은 신도
        와 함께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도록 한 중심도시.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서거할 때 까지 에베소의 교인에게 서한문식으로 쓴 기록문이 성경에베소의 근간이 되었
        다고 한다. 세계 각지의 기독인이 성지 순례와 관광차 찾는 특수목적의 여행 상품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명소다. 또한 예수께서 죽음에 임박해서 어머님 동정녀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을 하여 예수의 사후 마리아의 거처를 에베소 근교 산정으로 옮겼다
        고 한다. 그곳 또한 순례차원에서 방문객이 끝이지 않는다고 한다.

 
       인구 250,000명 이었던 아시아-로마제국의 수도 에베소의 중심시가지를 관통하는 대리석
       의 중앙대로. 중앙대로 양안에는 각종 건축물과 공공장소의 유적들이 당시의 도시내부 공
       간구조를 엿보게 한다. 에페소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본래 이곳에서 1키로 털어진 곳이 항구
       이었으나 그동안 지진등으로 구조가 변해서 현재는 약6키로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음)
              <- 지진과 함께 항구가 멀어진 것이 도시멸망의 원인 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의 중심시가지를 관통하는 대리석 의 중앙대로
        많은 관광객의 왕래로 대리석 길들은 닳고 닳아 만질 만질
 
  
 
  ㅇ   기둥 사이로 중앙로와 인도가 분리된 인도에 면한 왼쪽 건물인 상가의 1층은 점포,
        상가 2층은 주거의 주상복합 건물이었으며 현재 상가의 일부가 복원중이다.

 
                      왼쪽 건물이 상가이며 2층은 복원중

 


   ㅇ  상가에는 중앙로와 평행하여 문양이 새겨진 고급 보도 블럭을 깐 길이 차도와 분리시킨 인도

        아름다운 문양의 인도를 안토니우스와 크레오파트라가 거닐었다고 한다. 

 


        상점 인도의 아름다운 문양을 시저와 크레오파트라가 다닌 길

 

 

 

   ㅇ 폐허로 남은 총독관저

 


                           폐허로 남은 총독관저

 

   

   ㅇ  관광객이 들어가는 곳이 공중목욕탕 건물 입구. 3층 구조의 일층은 목욕탕, 2층은 몸 
        관리실, 3층은 수면실 등 귀족들의 다용도 공중목욕탕 이었다고 한다.

 


 

 

 

ㅇ 공공도서관 세르시우스의 전면.

 


 

 

 

  ㅇ  본래 에페소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겼으며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신전보다 약 100여미터 위에서 발굴되어 발굴된 위치에 전시되어 있음

      고대 그리스의 니케(나이키) 여신상. 아름다운 자태가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ㅇ   25,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극장의 전경. 2000년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는 세계적 유산. 로마의 원형극장의 규모는 도시의 인구 1/10의 크기로
       건축되었으며  별도의 무대음향장치가 필요 없단다.

 


                                 원형 음악당

 

 

 

    ㅇ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지가
        그리스가 아닌 터키의 에베소에 있다. 지금 남아 있는 대리석 돌기둥은 그 웅장했을

        신전의 편린의 하나에 불과한 조각기둥과 약간의 흔적들 밖에 없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늪지대에 만들기 시작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에는 네 방향으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

            인류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으로 간주된다.

 


 

 

 

   ㅇ늪지대에 지어진 신전의 그전모습을 그려놓은 것

 

 

 

    ㅇ에베소에서 관광 끝내고

         아름답고 소박한 어촌 휴양지 체스메의 여객터미널에서 일단 터키와 작별을 고한다. 

    ㅇ 이미나루도시를 지나서 체스메 (터키 체스메항구)로가서 통통배 타고 히오스로감

                      채스매에서 그리스(히오스섬)로 가는 배는 통통배라 그런지 멀미가 심했던 배를 탐

                      1시간 정도 달려 히오스항에 입함    

  

   ㅇ 체스매항구

 

                       

   ㅇ히오스항구

  

 

    ㅇ 1882년 터키군대가 그리스 히오스섬에 상륙 25,000명이나 학살하였으며,
        또 노예로 50,000명. 합하여 75,000명의 주민이 섬에서 사라졌다고 함
        지금 히오스 주민이 54,000명이라고하며 울릉도 크기의 섬

    ㅇ그리스 히오스항구에서  출국 심사

                     여권에 스탬프를 하나 콕 찍어주는 간단한 절차를 밟

   

    ㅇ  야간 페리로 건너는 에게해
         아테네로 가는  페리 탑승하여 밤잠을 잠

 

   ㅇ  2인 1실의 방은 2층으로 된 침대와 욕실로 이루어져 있고 창으로는 직접 바다가 보인다.
          마침 보름이라 바다 위에 드리운 달 그림자가 은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눈부시다.
          맥주 한캔을 마시고도 잠을 이룰 수 없어 밖으로 나가 보니 그 넓은 데크에 사람이 별로 없어 호

          젓 한 분위기에서 밤바다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히오스를 떠나 10시간 후인 내일 새벽 6시에는 피레우스항에 도착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 페리선상에서

 

    

 ㅇ  삐레우스항구 도착하여  조식후 스니온 곶으로 향하는 길가의 들판에는 올리브 나무가 무성히

                                   나그네들을 맞아줌

 

 ㅇ 올리브 그린색의 유래

  

     . 지중해 연안을  가다 보면  길마다 올리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그리스, 터키 사람들은  올리브를 즐겨 먹으며 올리브 또한 웰빙음식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힌다고 하여서  올리브를 먹어 보았으나  처음에는 우리 입맛에

       잘 안맞어 .....

       나중에는 빵하고 올리브하고 같이 먹었더니 차차 올리브 맛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여행 막바지일 때이다.

       이렇게 올리브 나무가 즐비하게 자라고 있는  들판들이  올리브 나무색깔로

       물들어 있어 이색깔을 보고 Olive Green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함.

    

   ㅇ 올리브 나무의 색을 보고 색명 올리브 그린이라고 명명함

   


                          올리브 그린색의 올리브나무

 

ㅇ 올리브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