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째(7월 1일)
호텔 조식 후 본격적인 빙하 관광을 위해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로 가는 길에 가장 오래된 스테이브교회
(목조건물 교회)를 둘렀다. 교회둘레에는 이색적이게도 무덤들이 있었다. 목조교회의 아름다움이란 가히
따라갈 그 무엇이 없을 것 같다.
스테이브교회(목조 건물 교회) 교회둘레에는 이색적이게도 무덤들이 있다
3-4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 계곡을 따라또 계곡 물이 벌써 다르다.
빙하가 녹아서 흘러가는 물이라 그런지 연한 초록의 하늘빛을 그대로 닮았다. 식물성 화합물과 빛의
작용으로 그런 빛을 띤다고 한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고 그 위에 있는 최고 수심 170
미터의 빙하 호수를 감상하면서 빙하의 신비를 느끼는 여행,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계곡물이 한참 녹을 때라 점점 더 세차게 흘러내린다. 저 멀리 높은 산은 눈과 얼음을 잔뜩 머리에
이고 앉았다. 그 밑으로 폭포를 이루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 해발이 점점
높아질수록 침엽수림은 사라지고 잡목지대가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가까이에는 잔풀
들만 보인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 한 굽이를 올라가니 드디어 가이드가 말한 170미터 수심의 빙하호수가 보인다.
엄청난 규모다. 호수 건너편 산은 그야말로 빙산이다. 뜨거운 태양조차 저 눈과 얼음을 다 녹이지는
못한 것이리라. 녹아내린 물이 저렇게 호수를 이뤘고 고원지대이니 여기가 바로 빙하의 출발
지점이고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를 생성해낸 곳이 아닌가 한다. 앞을 보아도 탁 트인 U자형 계곡이고
뒤를 보아도 그러하니 얄팍한 상식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젠 고원지대를 지나 피오르드가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앞으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U자형 계곡의 한 자락 한 자락이 원경을 이루고 하늘과 어울리면서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차창 밖으로 연출되는 대자연의 신비를 만끽하면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는 바다까지 조심스레
내려간다. 구절양장의 그 가파른 굽이 길에서 운전기사는 베테랑다운 운전 솜씨를 보인다.
브레이크라도 고장나는 날이면 모두의 운명은? 으, 끔찍하다. 그러나 중간 지점에서 잠시 내려
피오르드의 원경을 사진에 담는 여유도 즐긴다.
여객선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태우고 헬레쉴트라는 곳까지 약 두 시간 정도 천천히 항해를 했다.
좋은 경치라도 나오면 그것을 소개하는 선내 방송이 끊이지 않는다. 반갑게 우리말 방송도 흘러
나온다. 굽이치며 돌아가는 뱃길은 피오르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탈 여객선 선착장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웅장한 파노라마를 보기 위해 오늘도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은 이곳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깊이 팬 계곡, 그 사이에 옹기종기 들어선 작은 마을들, 협곡을 채운 바다 위를 유유히
미끄러지는 유람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피오르드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자연과 시간이 함께 빚어낸 작품으로서 아무 손색이 없었고 곳곳에 자리한 폭포 역시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로 피오르드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피오르드(Fjord)는
노르웨이 말로 내륙에 깊이 들어온 만(灣) 즉 협만(峽灣)이라는 의미다.
그 중에서도 4대 피오르드로 꼽히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송네 피오르드, 하당에르 피오르드,
리세 피오르드는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노르웨이 서해안은 북해와 맞닿은 곳으로 복잡한 해안선에 피오르드 지형이 발달해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구불구불한 해안선에는
내륙 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바다와 그 바다 옆으로 깎아지른 듯 경사가 심한 산이
서로 힘자랑이라도 하듯 뒤엉켜 있다. 계곡물이 한참 녹을 때라 점점 더 세차게 흘러내린다
7자매폭포 등 구경하고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유람 후 유람선에서 내린 버스는 부리나케 옥빛 계곡물을 거슬러 또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발길이 직접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빙하지대라고 가이드는 소개한다
남쪽 방향에 있는 브릭스달로 이동, 푸른 빙하지대를 관광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갑자기
오른쪽 머리 위로 눈 덮인 빙하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밑으로 세찬 폭포수를 내 품고 있다.
목표 지점에 다 온 것이다.약속한 시간에 소형 전기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하를 직접 가까이 가서 만져볼 수 있는 곳까지 우리 일행을 태우고 갈 차들이다. 한 대당 6, 7명이 탈 수 있는
지라 모두 5대에 나눠 타고 줄지어 오르기 시작한다. 옛날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마차를 타고
올랐다고 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고 위험성이 많아서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수입해 온
소형 전동차로 대체했다고 한다. 그 좁은 길을 어찌 그리 여유 있게 잘 빠져나가는지......
특히 물보라가 부서지는 지점을 지날 때는 온 몸이 다 젖을 정도로 시원했고 햇빛을 등지니
무지개까지 생겨서 다들 신기해한다. 나는 쌍무지개도 보았다.
폭포 지점을 휘돌아 좀더 올라가니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서부터는 10분정도 또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약간 경사진 길을 지나 큰 바위 지점을 지나니 왼쪽으로는 산에서 천천히 흘러내린 거대한
얼음덩이가 옥빛을 잔뜩 머금고 지척에 멈춰서 있고 오른쪽 천길 암벽 위로는 곳곳마다 날카로운
얼음덩이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기세로 누워 있고, 그 아래로는 폭포가 된 하얀 빙하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는 흔적은 여기저기에 보인다. 얼음과 얼음 사이로 사람 키의 몇 길이 넘는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그 부분이 녹아내린 곳이고 그 녹은 물은 그 아래로 작은 호수를 이루어 놓고 있다. 거대한 얼음덩이 하나가 떨어져나가 작은 빙산이 되어 호젓하게 물위에 떠 있다. 빙하 호수에 손을 넣어 보니 말 그대로 얼음물! 잠시만
물에 넣고 있으면 곧 동상에 걸려버릴 것만 같다. 일부 사람들은 허가를 얻어 빙벽 등반을 시도하기도 하는가 보다.
브릭스달 빙하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거대한 산들이변화무쌍하게 자신의 위용을 보여주면서 그 빙하의 끄트머리에서는 양떼들과 소들이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송네 피오르드(세계 최대 최장)의 한 자락을 15분간 횡단하고 긴 터널(라브라스터널 24킬로 미터)을
지나 오브하임이라는 곳에 있는 숙소에 닿았다.
오자마자 여장을 풀고 식당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해결한 뒤, 우리 조는 운치있는 호텔 앞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지척에 있는 바다는 송네피오르드의 끝부분인데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깝다. 바
람 한 점 없다. 조수간만의 차가 미약하게 느껴질 뿐이다. 저 동네 안쪽으로는 숱한 보트와 요트가
정박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숱한 캠핑 차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공간을 차지, 가족들끼리 나름대로의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다.
5일째 (7월 2일)
우리나라는 파도가 심하게 치지만 여기는 사시사철 바람이 없는 곳이라 바다의 수면이 거울 같다.
맞은편 산그림자가 그대로 비치고 있으니 명경지수 아니던가. 바다를 그렇게 표현해도 사람들이 믿을까?
2센티 정도의 두께로 납작하게 가공한 돌들이 가지런하게 지붕에 붙어있는. 노르웨이의 어느 곳을
가도 그런 지붕의 형태가 많은 것을 볼 때 틀림없이 보온력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경우는 지붕 위에 모래나 흙을 깔고 그 위에 풀이나 잔디, 혹은 꽃과 식물이 자라도록 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초가와 견줄 수 있는 전통가옥들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짐을 챙겨 또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노르웨이의 제2의 도시 베르겐을 여행하는 날이다. 버스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무려 24.5킬로 미터가 약간 넘는다. 빠른 속도로 차를 타고 달려도 통과하는 데 몇 십 분이 걸린다. 필요에 의해서 뚫은 터널일 테지만 이 나라에는 1,000개가 넘는 터널이 있고 터널을 뚫는 기술은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암석의 붕괴를 막기 위해 치밀하게 암석마다 쐐기를 박아놓았고 잘 단장된 느낌보다는 자연석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마감처리를 했다. 7킬로마다 차가 쉬거나 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파란 조명을 달아서 변화를 주었다. 운전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산소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바깥의 공기를 터널의 중간 지점까지 공급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기도 했단다.
터널 입구에서 중간 지점까지는 약간의 오르막이었고 그 다음은 계속 내리막인데 양쪽에서 터널을 약간 위를 향해 뚫어가다가 그 중간 지점에서 만나도록 되어있을 텐데 보통 기술은 아니다.
해발 2미터에 위치한 플롬역에서 해발 847미터의 뮈르달역까지 오르는 산악열차를 타고 다시 뮈르달역에서 보스역까지 일반 기차를 차고 가는 옵션 여행이 시작된다. 60유로를 지불하고 오늘 그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플롬이란 곳도 피요르드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오슬로나 베르겐으로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산악지대인 뮈르달까지 가는 교통 수단이 꼭 필요했을 터, 1920년부터 20여 년간 선로 공사를 전통적 기법으로 했고 그것이 완성되면서 두 지역만을 오가는 산악열차를 운행,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관광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코스라고 한다.
기차는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였다. 밖은 칙칙한 진초록 빛이지만 안은 온통 주황색 계통이다. 천장도 의자도 손잡이도 모두 그렇다. 기차는 굽이굽이 계속 돌고 돌아 올라가고만 있다. 좌우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과연 환상적이다. 그저 그렇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어제 본 빙하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물이 가파른 산을 타고 내리면서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그것이 모여 개천을 이루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양옆으로는 평화스런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찻길도 꾸불꾸불 맞은편으로 기어오르고 있는데, 뮈르달까지 올라가는 지방도인 듯 하다. 터널을 수도 없이 지난다. 어느 지점에선가 기차가 한 번 선다.
‘효스’ 폭포라는 곳인데, 엄청난 양의 빙하 물이 지척에 있는 계곡 밑으로 흘러내리는데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에 금방이라도 빨려들 것만 같다. 그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배려하는 지점인가 본데 제법 널찍하게 만들어 놓았다.
효스폭포
기차는 사십 분 정도를 기어올라 뮈르달 역에 우릴 내려놓고는 잠시 쉬다가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는 플롬역으로 내려가 버린다. 뮈르달 역은 한적했다. 마을이 있어서 생긴 역은 아니고 경유지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플롬역
나무라고는 없고 초지만 보인다. 얼굴을 약간 들어보면 빙산이 저 멀리 있다. 산꼭대기엔 만년설이 뒤덮여 있는데 손에 잡힐 듯하다. 조금만 더 오르면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우리를 태울 기차가 오려면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오슬로 행 기차를 타고 베르겐을 향해 또 달린다. 노르웨이의 서해안에 위치한 베르겐, 제2의 도시답게 활력이 넘쳤다.
식당에 들러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도시라고 한다.
맨 먼저 베르겐의 중심지였던 브릐겐 지역을 둘러보았다. 200년 넘은 독일풍의 목조 건물 여러 채가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데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로 되어 있다.
베르겐 어시장 어귀부터 호화유람선이 있는 선착장까지 잔잔한 바다가 크고 작은 배들을 띄워놓았는데 매우 한적해 보인다. . 시선을 좀더 올려서 보니 그 아름다운 베르겐의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황색, 군청색, 회색 지붕의 흰 다양한 건물들, 바다를 내려다보며 완만한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위쪽으로는 우거진 숲이 있어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는다.
베르겐 항구
브뤼겐 지역은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상업지역으로 야외 카페가 성업중이었다. 햇빛이 강렬한 곳이지만 일광욕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람들을 만나 담소하기에 적절한 곳인가 보다.
어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관광객들이 반드시 둘러본다는 곳, 과연 온갖 수산물들이 즐비하다.
베르겐에서 다시 보스라는 곳까지는 오전에 달렸던 길이다. 한 번 달렸던 길이지만 또 새롭다.같은 것도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리 보이듯 방향을 바꿔서 달리는 즐거움도 있음을 알겠다. 보스에서 오슬로로 가는 길은 두 번 다시 올 수 있는 길이 아니라서 차창 밖을 열심히 살피면서 달렸다. 침엽수림과 초지, 뭉게구름 피어난 하늘, 그리고 그 밑의 농가 등 그림 같은 것들을 수없이 감상하고 폭포가 있는 산악 지형을 통과하면서 한참을 달리니 또 피오르드가 나타난다.
하당에르 피오르드다. 30분마다 피오르드를 왕복하는 배가 저 건너편 길을 연결하고 있다. 천천히 횡단하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배삯은 무료란다, 노르웨이는 곳곳에 이런 곳이 많다. 다리로 연결하지 않는 것은 바다가 워낙 깊어서 교각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육지 깊숙한 곳까지 좁은 바다가 수십, 수백 킬로 기어 들어와서 이렇게 협만을 이루고 있으니 이게 바로 피오르드 아니던가, 수백만 년 전에 저 높은 산의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깊숙이 U자형 골짜기를 파놓았고 이젠 그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패인 곳을 메웠으니 과연 피오르드의 나라다.
피오르드를 통과한 후는 계속 산악 지형이다. 해발 2미터부터 1000미터까지 계속 오르막의
고원 지대를 계속 달리다가 간이휴게소가 있는 어느 한 지점에서 10분간 쉬기로 했다. 트롤 인형이 신비롭게 서 있기도 했고,
버스는 계속 달려도 연속되는 초지였다. 완만하기는 하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을 텐데, 아직 초원이다. 한 시간 이상 달렸을까? 어느 지점에선가 자잘한 자작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또 침엽수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달렸던 고원지대는 옛날에는 만년설로 뒤덮였던 빙하지대였을 텐데 지금은 눈이 다 녹아 초지가 되고, 우묵한 부분은 또 그렇게 호수가 되었던가 보다. 노르웨이 여행의 마지막 숙박지.
게일로(야일로)로 이동하여 식사를 마치고 여장을 풀었을 때는 이미 잠을 자야할 시간이 되고 말았다.
6일째(7월 3일)
숙소에서 출발 어느새 오슬로 시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를 했는데 식당은 노르웨이 여행 첫날 들렀던 한식집이다
성당 안의 거대한 돔식 천장엔 태양 같은 빛을 형상화한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다. 그 안에는 DEO * GLORIA * IN * EXCELSIS라고 새겨져 있다. 파이프 오르간, 스테인드글라스 등도 인상적이다.
성당 고유의 엄숙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성당 건물뿐만 아니라 일반 건물들의 외관도 최대한 예술성을 잘 살리고 있다. 칼 요한 거리에 있는 국립극장, 오슬로 대학교, 역사박물관, 국립 미술관까지 사진에 담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국경을 넘어 다시 스웨덴의 칼스타드까지 오는 길은 몇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 있었다.
7일째 (7월 4일)
작은 마을 칼스타드에서 출발한 버스는 수도인 스톡홀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둘러보나 한 폭의 그림이던 노르웨이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볼 만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볼보(VOLVO), 에릭손(Erickson)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체의 로고가 눈에 자주 띄었고30년 동안이나 인기를 끌고 있는 팝그룹 ‘아바(ABBA)’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드디어 스톡홀름 시청사에 이르렀다.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노벨상 시상식은 노벨 기념관에서 거행되고, 이곳 시청사에서 축하 만찬회가 열린다고 한다.
시청사
스톡홀름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엽서에 담긴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톡홀름, 바다에 유유히 떠다니는 요트, 카누,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칭송을 듣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물위의 도시였다.
스톡홀롬의 구시가지로 다시 내려가 왕궁 주변을 관람하였다. 왕의 대관식이 열린다는 대성당을 정면에 배치하고 그곳을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왕궁을 두었는데, 층 수는 3층이지만 거대하다.
온갖 조각품과 화려한 기둥장식을 하고 버티고 있는데, 출입구가 평지와 같아서 덴마크의 왕궁처럼 역시 권위적이지는 않다.
왕궁을 돌아 대성당 뒤로 옮기니 골동품 거리, 화려한 상가 골목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노벨기념관이 그 중앙에 자리잡았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노벨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 것이 무엇일까 궁리하다가 이 상을 제정하기로 하였는데 그 상을 시상하는 장소인데 참으로 소박한 건물이다. 오히려 그 앞 광장의 주변 상가 건물이 훨씬 더 아름답고 기묘하여 눈길을 끌었다. 광장 한 켠에 자리잡은 오래된 우물이 동서남북의 여기저기서 물을 뿜어낼 기세로 악마 모양으로 조각된 입에 철제 대롱을 달았는데, 이곳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버스는 시가지를 돌고 돌다가 북방 박물관 아래의 바사호 박물관에 닿는다.
바사호는 스웨덴의 국력이 막강하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왕 시대에 건조한 전함의 이름인데 길이 69미터, 폭 11.7미터 배수량 1,400톤의 규모로서 133명의 승무원과 300명의 전투원이 승선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촌이 왕으로 있는 폴란드를 제압하기 위해 1628년 8월 왕궁 근처의 부두를 출발하여 진격해 나가던 중 1.3킬로미터 지점에서 돛에 갑자기 실린 많은 바람 때문에 무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침몰되고 말았다는 불운의 배다.
막대한 돈을 들여 정성껏 축조한 배가 백성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격하다가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냥 가라앉고 말았으니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까? 건물 1~3층까지 안을 꽉 채우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전함이라고 하지만 배 전체가 화려하고 많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바사호에서
300여 년간 바다 속 깊이 잠겨있던 바사호를 인양한 것은 1930년 고고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약관 20세의 ANDERS FRANZEN이다. 그는 현왕의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왕한테 건의를 해서 30여년에 걸친 연구와 인양 작업 끝에 1961년 4월 뭍으로 끌어올려 이 박물관을 만들어 안치한 것이다. 박물관 안의 조명도 신경을 써서 너무 밝지 않게 했고,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외부의 빛을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급속한 부패를 막고자 했다. 바사호의 위용과 비극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이지만 오늘은 그것을 모두 감춘 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자라인’이란 거대한 배가 서서히 입항을 하고 있다. 실자라인의 ‘실자’는 ‘돌고래’라는 핀란드 말이고 돌고래처럼 신나고 활기차게 바다를 오가는 배라는 의미로 쓰여진 실자라인, 오늘 저녁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내일 아침 핀란드의 투르크까지 항해하도록 되어 있는 배이다.
여객터미널은 탑승을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터미널 탑승구에서부터 배에 오르기까지 약 100미터 정도 짐을 끌고 걸어가야 하는데, 오른쪽 옆에는 콘베이어 벨트가 사람 걸어가는 속도만큼 움직이고 있어서 배 타기 직전까지는 짐을 그 위에 올려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실자라인 에서 본 석양 배위에서
배는 엄청나게 컸다. 온갖 시설이 다 있다. 사우나, 식당, 카지노, 온갖 종류의 댄스장, 나이트 클럽 등등 그야말로 호화유람선이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선실에 들어가 짐을 풀고 식당에 갔더니 각종 청어 요리, 연어 요리, 과일, 맥주,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야채 수프, 진기한 음식들이 가득가득 차려져 있다. . 배 갑판에 올라가 일몰을 감상하고 면세점을 여기저기 다니다가 피곤함이 몰려와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비좁긴 해도 2층 침대, 화장실, 샤워부스까지 마련된 선실이 아주 쾌적해서 좋다.호화유람선의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
8일째(7월 5일)
우리가 자는 사이에 유람선은 이미 국경을 넘어 있었고 백야의 새벽은 늘 밝아서 배의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발틱해를 지나 핀란드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섬 주변의 호수 같은 바닷가에는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집들이 배에서 내리면 금방 닿을것만 같은 거리에 늘어서 있다. 투르크 항에서 수도 헬싱키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세계 1위의 휴대폰 노키아, 자작나무 수액으로 만든 히트 상품 자일리톨 껌, 그리고 울창한 숲과 수없이 많은 호수들, 이 모두가 핀란드의 상징물이 아닌가 싶다. 현지 가이드의 정신없이 바쁜 안내에 이끌려 초스피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중심가인 만네르하임 거리로 이동 제일 먼저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 공원에 들렀더니 시벨리우스 흉상과 얼굴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수많은 음정을 상징하는 길고 짧은 쇠막대를 뭉쳐 매달아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기원하는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 시벨리우스 공원 외세의 침략으로 힘들었던 나라이기에 이 나라 사람들은 그를 국가의 영웅으로 숭배하고 있다.
암석교회 시벨리우스공원
대성당 앞의 원로원 광장, 귀족회관, 헬싱키 대통령 관저 앞의 커피, 도너츠파는 상점이 유명 , 수오멘린나 요새(16 킬로미터)의 성벽,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암석 교회)는 3100개의 파이프가 있는 오르간, 오르간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함,
헬싱키 관광을 마치고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 도시인 란핀란타 로 이동하여 석식및 호텔 투숙
9일째(7월 6일)
란핀란드에서 호텔 조식후러시아 국경선을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러시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하는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 데에 세 시간이나 걸렸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공무원들의 태도엔 급할 것이 없었다. 국경을 넘기에 앞서 이것저것 조사하는 것이 많은가 본데, 수많은 차량들이 아무리 길게 늘어서 있어도 막무가내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샹뻬째르부르그로이로
중심에 네바강이 흐르고 있으며,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이지만예술적으로 훌륭한 건축물이 많으며 ‘유럽의 창’ 이라고 불리는 도시라고 한다. 네덜란드의 건축 양식을 본뜬 바로크 풍의 도시로 형성된 도시, 후에 레닌의 고향임을 기념하기 위해 ‘레닌그라드’ 라고 불리다가 1996년에 다시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여름 궁전 입구에서 내리자 우리나라 관광객을 알아본 거리의 악사들이 애국가, 고향의 봄,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고 . 궁전으로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숲이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좀더 걸어 들어가니 궁전 앞 뜰에 연못이 있었고 뒤로 돌아가 보았더니 황금빛을 입힌 수많은 동상과 어우러진 분수공원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궁전 건물 곳곳에도 금박이 입혀 있었다.
여름궁전
여름 궁전 입구에서 내리자 우리나라 관광객을 알아본 거리의 악사들이 애국가, 고향의 봄, 아리랑을 연주하며 댓가로 몇 푼 던져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궁전으로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숲이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얼마나 부지런히 가꾸어야 저렇게 아름다운 숲이 조성될 수 있을까? 좀더 걸어 들어가니 궁전 앞 뜰에 연못이 있었고 뒤로 돌아가 보았더니 황금빛을 입힌 수많은 동상과 어우러진 분수공원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궁전 건물 곳곳에도 금박이 입혀 있었다.피터 대제가 머물렀다는 바닷가의 작은 집에도 가 봤다.
여름궁전에서
예쁜 꽃으로 꾸며진 정원도 얼마나 화려한지 드넓은 궁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다.
저녁에는 네바강 야경투어나 마린스키극장에서 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중에서 선택하는데 후자선택하여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볼쇼이 발레단이 하는백조의 호수로 결정 오후에는 발레감상( 19:30~21: 30) 정말 어찌 몸이 저렇게 유연할까?보기를 잘 했다 싶다.
마린스키 극장 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의호수
호텔로와 투숙
10일째(7월 7일)
에르마타쥐박물관(겨울 궁전):
황실의 겨울 거처로 사용.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등으로 있음. 모르단 계단에서 관람시작
에리미타쥐 박물관(세계 3대 박물관(대영, 루브르를 포함) 중의 하나인박물관안의 황금 공작새 시계. 황제 집무실, 황금의 방. 피카소, 고갱, 램블란트의 양치기 (양의 귀가 햇빛을 받아 실핏줄보이는 것이 인상적)
겨울 궁전 미술관에서
이삭성당
러시아 정교회,1818년부터 1858년까지 40년 동안 공사를 했는데 통대리석(1개가 114톤) 기둥들이 건물 바깥에 주욱 늘어선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공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며,한 때 10,000명이 미사를 보았던 만큼 엄청난 규모의 성당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용으로만 사용된단다.
네바강: 군 해군성 본부, 순양함 아브로라호(오로라호),러일 전쟁때 (1900년)사용하고 패한 순양함
오로라호 (배 정박 )의 대포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1740년에 만든 요새로 토리섬안에 있음.피터대제의 동상이 있으며 네바강의 범람으로 조그씩 무너짐
넵스키 대로 관광(3개의 운하와 교차하는 도로), 지하철 1호 (지하 100미터에서 운행)
요새앞에서 피터대제 동상에서
승리의 광장(1941~1945)관관후 공항으로 이동 모스크바 향발 하여 모스크바 도착투숙
11일째 (7월 8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관광하는 날, 첫 코스는 아르바트 거리로 향했다. 거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인사동 거리와 비교할 수 있는데, 러시아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이 결혼하여 한 때 신혼살림을 살았던 곳도 기념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바로 맞은편엔 부인과 함께 서 있는 동상이 퍽 싱그럽다. 화사하게 차려입고 어디론가 외출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동시는 말 배우기 시작 할때 부터 암송하면 음유시를 잘 한다고 한다.
푸쉬긴 동상 앞에서 아르바트 거리
삼성 애니콜 광고, LG광고가 크렘린을 둘러싸고 있고, 롯데 백화점 공사가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완공이 되면 코리아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도 된다. 가이드는 또 모스크바에서 지형적으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곳으로 우릴 안내한다. 모스크바 시내를 아래로 굽어볼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지 낮은 언덕에 불과하여 실감나지는 않는다. 크렘린 광장에는 성모 수태 성당, 12사도 사원 등이 또 그 안에 있다. 성당 안으로 우릴 안내하여 러시아 정교의 분위기와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신념 등에 대해 가이드는 설명한다.
. 왕의 대포, 이반대제의 종루, 12사도 사원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 건물, 넓으면서도 아늑한 정원으로 꾸며진 크렘린궁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일정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광장의 이름이 ‘붉은 광장’이란다. ‘붉다’는 말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통용된단다.
크렘린 광장 양파궁전
광장 끝자락을 휘돌아 나간 곳에 알렉산드레이 공원이 있다. 그곳에 안치된 무명용사의 묘, 꺼지지 않는 불에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일 모스크바 관광후 공항으로 이동 SU 599 비행기로 모스크바 출발, 12일째(7월 9일) 인천 공항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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